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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시] 최영미 - 괴물

괴물 - 최영미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Me too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,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"이 교활한 늙은이야!"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받고 나는 도망쳤다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, 100권의 시집을 펴낸"En은 수도꼭지야, 틀면 나오거든그런데 그 물이 똥물이지 뭐니"(우리끼리 있을 때)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..

STUDY 2018.02.19

[시] 최영미 - 돼지들에게

돼지들에게 - 최영미 언젠가 몹시 피곤한 오후, 돼지에게 진주를 준 적이 있다. 좋아라 날뛰며 그는 다른 돼지들에게 뛰어가진주가 내 것이 되었다고 자랑했다.하나 그건 금이 간 진주, 그는 모른다.내 서랍 속엔 더 맑고 흠 없는 진주가 잠자고 있으니 외딴 섬, 한적한 해변에 세워진 우리집,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내 방의 장롱 깊은 곳에는내가 태어난 바다의 신비를 닮은, 날씨에 따라 빛과 색깔이 변하는 크고 작은 구슬이 천 개쯤 꿰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음을.........사람들은 모른다. 그가 가진 건 시장에 내다 팔지도 못할 못난이 진주.철없는 아이들의 장난감으로나 쓰이라지.떠들기 좋아하는 돼지들의 술안주로나 씹히라지. 언제 어디서였는지 나는 잊었다.언젠가 몹시 흐리고 피곤한 오후.비를 피하려 들어간 오두..

STUDY 2018.02.19